본문 바로가기

흔남이's 리뷰세상™/여행정보

대구관광여행/대구가볼만한곳 : 대구싹쓸이투어 #3 신숭겸장군유적지,불로동고분군


대구관광여행/대구가볼만한곳 : 대구싹쓸이투어 #3 신숭겸장군유적지,불로동고분군

 


대구가볼만한곳,대구관광여행,대구싹쓸이투어,데이트코스,신숭겸장군유적지,불로동고분군


대구에 있으면서도 아직도 가보지 못한 곳들이 많은 것 같아,이번 포스팅에서는 대구의 숨은 관광코스를스스로 찾아서 일정을 짜봤습니다.일명 "대구 싹쓸이 투어"라고 지칭해 봤습니다.자 그럼, 대구의 숨어 있는 보석같은 곳으로 떠나 보실까요? 이번편은 대구싹쓸이 투어 3편입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 : 신숭겸장군유적지

 





< ▲ 신숭겸장군 동상 >



대구 싹쓸이 투어 여섯번째 코스는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신숭겸장군유적지입니다.

신숭겸 장군유적지는 고려 개국공신인 장절공 신숭겸 장군이 순절한 곳으로써, 그의 명복을 빌고자 세워진 유적지 입니다.



신숭겸장군유적지

> 찾아가시는길 :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526

> 이용시간 : 10:00 ~ 17:00, 연중무휴



신숭겸(?∼927)은 평산 신씨의 시조로서, 918년 배현경, 홍유, 복지겸 등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의 건국에 이바지한 인물이다. 고려개국의 1등 공신인 신숭겸 장군은 궁예가 세운 나라인 태봉의 기병장수였다. 그런데 궁예가 왕위에 즉위한 지 몇년 만에 처자식을 살해하고 백성을 혹사하는 등 폭정이 심해지자 동료 기장들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받들어 고려를 개국하였다. 고려 태조 10년(927) 신라를 침공한 후백제 견훤의 군사를 물리치기 위해 왕건과 함께 출전하였다. 왕건이 이 곳 공산싸움에서 후백제군에 포위되어 위기에 빠지자, 왕건의 옷을 입고 변장하여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으며, 왕건을 그 틈을 이용하여 홀로 탈출하였다고 한다. 왕건은 장군의 죽음을 애통히 여겨 그의 시신을 거두어 지금의 춘천인 광해주에서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웠다. 그리고 신숭겸이 순절한 이 곳에 순절단과 지묘사(미리사)를 세워 그의 명복을 빌게하고, 토지를 내려 이 곳을 지키게 하였다고 한다.

1607년(선조 40)에 없어진 지묘사 자리에 경상도 관찰사 유영순이 서원인 충렬사를 세워 장군을 모셨으며, 1672년(현종 13)에 표충사는 사액서원이 되었다. 1871년(고종 8)에 서원철폐령으로 표충사가 없어진 뒤에 후손들이 재사를 지어 이 곳을 지켜오던 중 1993년에 표충사를 복원하였다.

고려태사 장절공 신숭겸 장군의 유적은 지난 74년 대구광역시 기념물로 지정, 장절공의 충절을 기리는 위패(位牌)와 영정(影幀)이 모셔져 있으며, 순절단(殉節壇)과 충렬비(忠烈碑)등이 있다.






< ▲ 신숭겸장군유적지 안내판 >




< ▲ 신숭겸장군유적지 일대 >



신숭겸장군유적지에는 홍살문, 표충잔, 단소삼문,순절비각,표충재삼문,표충재,충렬비,표충사,벽화도등이 있어 신숭겸장군의 충절을 기리고 있습니다.




< ▲ 신숭겸장군유적지 표충단 >


표충단


이 곳은 서기 927년 후백제 왕 견훤이 신라를 침공하고 올라 올때 왕건이 신숭겸, 김락장군을 대동하고 후백제군과 맞서 싸운 곳이다. 후백제군에 포위되어 5,000 고려 기병이 몰살의 위기에 처 했을 때 신숭겸 장군은 왕건을 구하기 위해 왕을 피신케하고 왕의 옷을 바꾸어 입고 어거를 타고 왕을 가장하여 최후까지 싸우다 장렬히 전사 한 곳으로 시신은 강원도 춘천에 매장하였다. 고려때는 지묘사 절을 지어 향사를 모셔오다가 1607년에 후손 신흠과 외손인 경상도 관찰사 유영순이 신숭겸 장군이 돌아가신 이 자리에 단을 쌓아 위왕대사의 정신을 기려 오늘에 이른다.





< ▲ 신숭겸장군유적지 순절비각 >






< ▲ 신숭겸장군유적지 태조왕건나무 >



이곳엔 태조왕건나무가 있는데, 이나무는 수령이 약 400년 정도 된 팽나무로,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을 기리기 위하여 태조왕건나무라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 ▲ 신숭겸장군유적지 충열문 >



신숭겸장군유적지를 탐방하면서 약간 아쉬웠던게 표충재삼문, 충열문이 굳게 잠겨 있어서 표충재,표충사,매판단,상절당,충렬비등을 볼수가 없었습니다. 관광안내소도 닫혀있고 설명글이 없어서 아쉽게도 발길을 돌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표충재와 동재 서재

표충재는 뒤로 높다랗게 사당을 업고, 순절단이 내려다보이는 왕산 중턱에 있다. 표충재라는 편액이 걸려있는 중심 건물과 동재와 서재가 있다. 표충사는 일명 표충서원으로 불리면서 유림에서 지켜오다가 1871년 (고종 8)에 훼철된 뒤에는 순절단을 단소로 후손들이 향사를 받들었다. 여러해 동안 영남 족친들이 건축비를 모아서 1888년(고종 25)에 표충사 옛터에 완공했다. 표충재 현판은 충익공 신정희가 썼다. 표충재 왼쪽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신숭겸 장군의 높은 절개를 추모하여 건립된 강당인 '상절당'이 있다.



충렬비

신승겸 장군의 충절을 기리는 비석으로, 표충재 동편 석축 위에 있다. 1607년(선조40)에 경상도 관찰사로 있던 외손 유영순이 영남 유림, 후손들과 의논하여 장절공 사우를 지을 때 같이 세웠으며, 예조판서 신흠은 글을 짓고, 여주목사 김현성을 글씨를 쓰고, 안변도호부사 김상용이 전자를 썼다. 1781년에 비각이 허물어지고 비가 넘어진 것을 관민이 힘을 모아 다음해 8월에 바로 세웠으며, 같은 해에 비각도 고쳐 세웠다. 지금있는 비각은 1979년 대구시에서 고쳤다. 용머리에 거북 받침이 인상적이다.



* 한국관광공사 참조

  http://korean.visitkorea.or.kr/kor/inut/where/where_main_search.jsp?cid=1326342&out_service=Y






< ▲ 신숭겸장군유적지 산책로 >




< ▲ 신숭겸장군유적지 일대 >












< ▲ 신숭겸장군유적지 벽화도 >



유적지내 벽화도에는 "오늘을 있게 한 호국의 정령 신숭겸장군", "뛰어난 지략 살신성인으로 나라를구하다", "용맹한기상,장군의 넋을기리니","외로운충정 그리는 마음 영원하리"라는 4개의 큰 테마를 벽화도로 나타내어 신숭겸장군을 벽화로 더욱 쉽게 이해할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신숭겸장군유적지를 찾게 되시면 이런곳에?라는 생각을 하실꺼란 생각이 드는데, 그만큼 주거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그럴수도 있지만, 그만큼 가까운 곳에 위인들의 넋을 기리는 곳이 있고, 그곳을 방문할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아름다운 일몰풍경을 볼 수 있는 : 불로동고분군

 





< ▲ 불로동고분군 일대 >


불로동고분군

> 찾아가시는길 : 대구광역시 동구 불노동 335


대망의 대구싹쓸이투어 마지막 코스는 삼국시대 무덤이 밀집 분포되어 있는 불로동고분군입니다.

대구 불로동고분군은 사적 26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210여기의 삼국시대 고총고분이 밀집 분포되어 있는 대규모 고분입니다. 고분군의 조성연대는 5~6세기경이며, 고분군의 주인은 이 지역 지배세력의 분묘들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 ▲ 불로동고분군 일대 >



불로동고분군의 부장품으로는 금제 혹은 금동제 장신구와 철제무기 무늬를 새긴 토기등 많은 출토물이 있습니다. 이러한 출토물들은 소중가 사적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 ▲ 불로동고분군 일대 >



블로동고분군 탐방로가 따로 지정되어 있으며 규모가 대단해서 곧 해도 저물꺼 같아서 한바퀴를 다 돌지는 못햇습니다.하지만, 어느정도의 고분들을보면서 주변 경치 또한 즐길수가 있었는데요. 불로동고분군에서 바라보는 대구 도심은 또하난의 매력으로 다가 왔습니다. 그리고 일몰이 되면서 고분군과 어울러지는 장관은 제법 괜찮았습니다. 


현재, 불로동고분군은 대구 올레 팔공상 6코스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네요^^


이상으로 제 나름대로 짜본 대구싹쓸이투어를 마무리 해 보는데요,

출발지였던 대구사격장부터 여행의 종착지 불로동고분군까지 아직도 처음인 곳이 많다는 것을 느꼈으며

대구 지역에도 가볼만한곳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대구싹쓸이투어를 마무리하면서 3편 모두 읽어주신 방문객이 있다면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이놀자 데뷰 선정  http://enolja.com/devu